4월21일(토)-22일(일), 내 생애 첫 울트라 마라톤 도전, 불교 108 마라톤… [대회 참가기]
- 대회명 : 불교 108 울트라 마라톤
- 장소 : 조계사(종각)
- 참가종목 : 105km
- 날씨 : 비
작년에 도전하려다가 오른쪽 무릎의 부상으로 포기하였던 울트라 마라톤,
동마가 끝나고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찾아보니 불교와 천진암 대회가 눈에 띄었다. 한달 정도이후인 불교마라톤을 우선적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인간의 백팔번뇌를 떨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가를 결정했다.
한번도 뛰어본 적이 없는 거리라 상당히 부담이 되면서도 기간이 많이 남아서인지 잘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산달리기, 하프, 인터벌, 그리고 2주전에는 밤샘 달리기 등의 훈련을 하면서 대회가 다가오자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한다.
막상 당일이 되니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 머리 속이 하얘진 것 같다. 사무실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도 아무 생각이 안든다. 3시경에 나와서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어제 저녁에 준비해 둔 것들을 챙겨서 나오는데도 무엇이 빠졌는지 당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아침부터 계속 쏟아지는 비는 오늘 달리기에서 엄청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지하철을 타고, 종각에 내려 조계사에 가니, 이 비 속에서도 달리겠다고 모인 달림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처마밑에 모여 있다. 최병도님, 이석주님, 장운용님과 만나 달릴 옷으로 갈아 입고, 물품을 맡기는데도 이것저것 놓치고, 흘리고 난리가 아니다. 평소의 내 모습과는 자뭇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긴장되거나 두렵거나 한 것도 아닌데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당체 무슨 현상인지? 몇 번을 흘리고, 챙기고, 물품을 다시 맡기고 하면서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여자 울트라 마라톤의 지존, 김순임님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고, 게다가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 보니 출발전 행사 내용은 아무 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갑자기 출발이라는 얘기에 화들짝 놀라 앞을 보니 선두그룹이 빗속을 달려 나간다.
“이 빗속을 달리다니, 이게 무슨 미친 짓이지?”하는 혼잣말을 하면서 이석주님과 출발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신발은 다 젖었고, 운동화는 벌써 무거움이 느껴진다. 그래도 서울의 종로와 광화문, 서대문 등을 달리는 기분은 최고다. 사람들이 뭐하는 것인지 눈이 휘둥그레 쳐다들 본다. 어떤 사람은 너무 궁금한지 뭐하는 거냐고 묻기도 한다. 가볍게 울트라 마라톤이요 한마디하면서 지나친다.
오후 6시에 출발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굵어지고, 배낭을 맨 위에다가 우의까지 입었으니 달리기에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도 달림이들의 무리 속에서 함께 달리는 기분은 색다른 그 무엇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1CP를 올라갈 때, 김순임님이 빠르게 뛰어 내려오는 모습을 봤다.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 저렇게 계속 달려야만 1등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이석주님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달리면서 2CP에 가니 무릎이 안 좋다고 걱정을 한다. 아직 갈 길이 태산인데 벌써 무릎 통증이 느껴진다고 먼저 가란다. 별 수 없이 조금 빨리 뛰는 무리에 섞여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석주님은 조금가면 다시 뒤에서 따라오고 해서 힘들기는 하겠지만 선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국사를 지나서부터는 페이스가 맞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달리게 되었다. 앞뒤를 봐도 아무도 없고, 그저 묵묵히 달리기만 했다. 혼자 이 생각, 저 생각도 하고, 독백도 해 보고 그러면서 혹시 잘못된 길로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그래도 한참을 달리다 보니 뒤에 누군가 오고 있어 길이 맞냐고 물어 보고, 열심히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42km 지점이라고 자봉이 알려주는 곳에 도착했다. 이제 풀코스 뛰었는데 다리는 무겁고, 발은 다 젖어서 물집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오른쪽 무릎 통증도 조금씩 느껴진다. 앞으로 지금 뛴 것의 1.5배를 더 달려야 하는데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태산이다.
43.5km 하니랜드 CP에서 음료와 간식을 먹고, 언덕길이라 빠르게 걸었다. 이미 몸은 지쳤지만 다시 힘을 내서 걷다 뛰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57km 보광사 도착, 된장국밥이 왜 이리 맛있는지… 한 그릇을 해치우면서 다 젖은 신발의 물도 빼고, 양말도 짜서 다시 신으려고 벗어보니 이미 발은 난리가 아니다. 벗겨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다 망가진 발의 인증샷을 찍어 본다. 이건 70대 노인네 발 같이 몇 시간만에 부쩍 늙어 버렸다. 주위를 보니 한숨 자고 가는 분들도 눈에 띈다. 여기서 잤다가는 감기들 것 같아 참고 다시 출발한다. 보광사 출발 시각, 새벽 2시26분…
배에 뜨끈한 된장국물이 들어가니 힘은 생겼는데, 뛰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내리막길이니 천천히 달려본다. 절반을 왔으니 다시 출발한다는 생각을 갖으려고 애쓰는데, 그것도 뜻대로 안된다. 이 만큼을 다시 달려야 한다는 끔찍함에 몸서리까지 쳐진다. 그렇다고 손들고 집에 갈 수도 없고, 내가 돈내고 달려들었으니 끝장을 봐야지, 아마 돈주면서 하라하면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달림이들이 거의 안보인다. 거리가 거리인만큼 페이스가 달라서 분산되어 버린 것 같다. 길 잃을까봐 앞사람의 경광등을 따라 달려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코스에 대해 충분히 검토, 숙지하고 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막급하다. 일 바쁘다는 핑계로, 달림이들 따라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무 준비없이 달려들었으니…, 출발지에서 받은 코스 설명서는 비에 젖어 보광사에서 버렸으니 이제는 오로지 달림이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에서 앞 달림이 경광등을 보고 따라갔는데 놓쳐버렸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건지, 찾아 헤맬 수도 없고, 다시 온 길로 돌아나가 달림이들을 기다린다. 핑계낌에 스트레칭도 하고, 쉬기도 했지만 알바하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 힘빠지게 만든다. 잘못된 길로 헤매는 것을 알바라는 울트라 전문용어로 쓴다는 것을 달림이들과 얘기하면서 알았다. 한 10분 기다리니 나이 지긋하신 분이 달려오신다. 길을 몰라서 그런다고 괜찮으면 같이 뛰겠다고 하니 흔쾌히 응해 주신다. 이번 첫 울트라 도전이라는데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 길은 꿰뚫고 있고, 달리는 속도는 느리나 쉬지 않고 달리니 따라 가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충남서산에서 참가한 분과 3명이 말동무가 되어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송추삼거리를 지나 구파발 방향으로 흥국사에 가니 오뎅을 주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먹고 화장실에 갔다 와서 같이 출발하는데 나이 드신 분의 페이스가 더욱 빨라져서 쫓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래도 열심히 따라가는데 은평 뉴타운 아파트 쪽에서 사라졌다. 그 바람에 두번째 알바를 하고, 물론 첫 알바 경험이 있으니 깊이 들어가지 않고, 간단히 헤매고 다시 나와서 다른 주자들을 기다렸다. 울트라는 알바 안하려면 코스에 대한 사전 숙지가 꼭 필요한 것 같다. 나야 간단히 알바했으니 망정이지 오래했다면 다시 돌아와서 뛰고 싶은 생각 자체가 생기지 않아 포기할 것 같다.
이제는 날이 밝아 온다. 새로운 동지를 만나 같이 뛰려는데 이 젊은 친구는 뛰지 않고, 걸으려고만 한다. 구파발역과 연신내역, 불광역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코스를 찾았으니 속도를 높여서 다시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한 30여분을 달리니 앞 주자가 보인다. 물어봤더니 본인도 코스를 몰라서 앞사람을 따라만 간단다. 그래서 추월하여 다시 달리니 앞에 덩치 좋은 주자가 있다. 얘기했더니 울트라도 많이 뛰었고, 코스도 꿰뚫고 있어서 함께 뛰겠다고 부탁을 하고 달리고 있는데, 조금 전에 추월했던 길모른다는 분이 따라와서 3명이 동반주를 하게 되었다.
이 두 분들과 도착지까지 함께 들어오는 동반주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북악터널을 향해 가는데, 그 언덕이 왜 이리 곤혹스러운지, 차만 타고 다녔지 걸어서 북악터널을 지나간 것은 처음인데다, 지쳐 있고 중간에 CP가 없어서 배가 고파 너무 힘들었다. 옆에 분에게 에너지바를 하나 얻어 먹었는데 그것 같고도 힘이 생기지 않는다.
힘들게 국민대를 지나가니 자봉팀이 있다. 바나나가 없어서 1개 밖에 못먹고, 오이만 몇 개를 집어 먹었다. 그랬더니 다소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무 잘 아는 길이다. 고대 정문에서 마지막 확인을 받고, 제한시간에 못들어 갈 수도 있다는 동반주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밤새 고생하고 완주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끔찍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성북구청을 지나 삼선교, 혜화동에 오니 이제 도착지가 다왔다는 생각에 여유가 생긴다. 제한시간도 충분히 남았고, 우리 세명은 담소를 나누면서 걸어 왔다. 도착지가 보이자 천천히 달리는 모습으로 세명이 손잡고 함께 들어왔다. 도착시간 16시간 28분, 감격의 악수를 나누고, 기념 사진도 찍고, 같이 국밥과 부침개도 나누어 먹었다.
도착지에서 이석주님과 장운용님이 반겨 맞이해준다.
내 첫 울트라마라톤은 16시간 28분의 기록으로 완주, 마무리되었다. 하루의 2/3를 달렸다.
들어와서 보니 내 몰골이 말이 아님을, 밤새 비와 땀에 쩔어 노숙자 냄새가 나는데 장난이 아니다. 주위에 누가 오고 싶지 않을텐데, 두 분은 그래도 유쾌하게 환영해주니…
내 첫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몇 가지 느낀 것은,
첫째, 도전을 해야 성취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렇게 멀게만 느꼈졌던 105km가 한걸음 한걸음, 달리고 걷다 보니 도착지에 와있다는…, 세상 사는 이치도 비슷하지 않을까?
둘째, 기왕 하는 거면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헤드렌턴, 경광등과 같은 기본 장비는 물론 코스 숙지 또는 사전답사 등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일단 길을 헤매게 되면 다시 뛰고 싶은 의욕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달리기 시간의 절반은 혼자 달리고, 절반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달리자. 새벽녘에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서 달릴 때는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재충전될 수 있기에…
넷째,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동지애를 갖고 달리자. 아는 길은 달림이들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알려주고, 지친 달림이에게는 격려와 동반주를, 완주후에는 더 고생하고 들어오는 달림이에게 음식을 갖다 줄 수 있는…
마지막으로, 결론은 울트라는 미친 짓이다. 가능한한 하지 말라.
그런데 다음 도전할 대회를 찾고 있는 나를 어이 말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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